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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ook Review " 소유냐존재냐"


글쓴이: 박승호 * http://pshphoto.com

등록일: 2015-03-10 09:26
조회수: 1815
 

소유냐 존재냐


- 에리히 프롬 지음 -


뛰어난 정신분석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책에서 우리 삶의 두가지 실존양식
인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에 대해 분석하고 보다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이 존재의 삶
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1. 소유의 삶과 존재의 삶
기술과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물질적 풍요에 따
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 무제한적인 개인의 자유를 누릴 것이라는 환상을 품었
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한갓 꿈일 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욕망의 충족이 결코
행복을 가져오지 않았음은 물론 우리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꿈은 관료주의 체제의
부속품이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소유냐 존재냐의 양자택일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
다. 소유한다는 것은 삶의 정상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사
물을 소유하며, 무언가를 즐기기 위해서도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 만일 아무것도 소유
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이곳에서 말하는 소유의
삶은 생존의 기본적 여건을 넘어서서 소유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하는 그런 양식을
의미한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한다. 존재적 인간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사
실에 자신을 맡긴다. 지식에 있어서도 소유양식의 목표가 보다 많이 아는 것이라면
존재양식의 목표는 보다 깊이 아는 것이다. 신앙에서 보면 소유양식에서는 신이 하나
의 우상이 되어 개인의 경험과는 무관하게 된다. 존재양식에서 신앙은 마치 젖먹이
아이가 어머니의 젖가슴을 믿는 그런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신앙은
끊임없는 자기 창조의 능동적 과정이며 “그리스도가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영원히 탄
생되는 과정”이다. 사랑에서도 소유양식의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지배함
을 의미한다. 존재양식의 사랑은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려고 하며 무엇이든 베풀고
관심을 얻으려 하며 즐거워하는 활동이다.

소유의 추구는 계급간의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계급을 타파함으로써
계급투쟁에 종식을 고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은 엄연한 허구다. 공산주의 체제
역시 근본적으로 삶의 목표를 무제한의 소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관계에 있다.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나의 자아이다. 자신의 육체, 이름,
사회적 지위, 소유물,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 등이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각기 소유물로 느낀다는 점, 그리고 그 사물이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유형태의 예로 자동차 소유를 보면 자동차는 내가 애착을 느끼는 구체적 대상이
라기보다 나의 신분과 나의 자아의 상징이요, 나의 힘의 연장이다. 내가 새차를 자주
바꾸면 이는 꽃을 꺾는 행위와 같은 지배의 느낌을 주며, 익숙해진 것에서 벗어나 새
로운 자극을 만족시키는 효과를 준다. 우리는 자동차 뿐 아니라 나아닌 타인을 소유
물로 간주하고 심지어는 감정이나 건강, 질병, 습관까지도 소유물로 체험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사유재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의 것으
로 하는 것과 그렇게 취득한 것을 보유하는 무제한의 권리다. 나의 재산을 지키고 그
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을 바라는 태도는 모든 인간과 사물을 죽은 것으로 나
의 힘에 종속된 대상으로 변질시킨다. 소유적 존재양식의 인간은 남들과 비교하여 자
신이 우월하다는 점과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의식, 그리고 정복하고 약탈하고 죽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서 행복을 발견한다.

2. 존재적 실존양식

존재적 실존양식의 전제조건은 독립과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 가장 본질적 특성은 능동성인데 이는 인간의 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
서 내면적 활동상태를 뜻한다. 즉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갖추어진 풍요로운 인간적 재
능의 표출이다.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사랑하는 것, 고립된 자아
의 감옥을 초극하며,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체험은
언어로 담을 수 없다. 체험이란 일단 사상과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증발해버리고 만
다.(노자의 도가도 비상도의 개념과 비슷한 의미같음)


존재적 실존양식의 상징을 보자. 푸른색 유리가 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푸른
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을 모두 흡수하고 통과시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예가 있다. 유
리가 푸른 것은 푸른 색을 품고 있지 않은데 기인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기 위
해서는 자기 중심주의와 아집을 버려야 하며,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텅 비워야 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본성이 인간의 특징을 이룬다고 확신했다. 한 인간의 덕성이나
악덕, 성공이나 실패, 행복이나 고통, 능동성이나 수용성은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본
성이 그에게 어느정도 잘 실현되느냐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인간 본성의 전형
에 접근할수록 그만큼 우리의 자유와 행복도 커진다고 보았다. 스피노자는 정신적 건
강은 올바른 삶의 발현이며 정신적 질병은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바에 부응하지 못
하는 삶의 징후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활동은 인간 종의 특성이며, 노동은 인간의 활동을
대표하며, 인간의 활동은 곧 삶이라고 보았다. 반면 자본은 축적된 것, 지나간 것, 궁
극적으로 죽은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중요하게 여긴 점은 삶이 죽은 것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죽은 것이 삶을 지배하는가하는 문제였다. 그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삶이 죽음
을 이기는 사회였다.


존재의 의미는 현상과 대비시킬 때 분명해진다. 나의 외적태도는 나를 움직이는 실
재의 힘과는 다른 수가 많다. 나의 태도가 나의 성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성격구조, 나의 태도 이면의 진정한 동기가 나의 참 존재이다. 진정한 통찰은 흔히
인식되지도 않고 직접 관찰할 수도 없는 내면적 실재에 몰두하는 것이다. 행동과 성
격, 가면과 그 이면의 실재사이의 괴리를 벗기는 것이 프로이트의 심리분석이 이룩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이다.


우리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뿌리 깊이 타고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능력
을 표출하려는 욕구,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이기심의
감옥에서 빠져나가려는 욕구 등등. 베풀고 나누고자하는 욕구와 남을 위한 희생정신
은 아직도 간호사, 의사, 수도사, 수녀같은 특정한 사회적 직업종사자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타인과의 일체감을 체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실존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행동을 낳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다.


우리라는 연대감의 욕구는 어머니, 우상, 종족, 나라, 계층, 종교, 동창관계, 직업상
단체 등과의 공생적 유대 등으로 나타난다. 이 욕구는 또한 적응력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국외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은 죽음에 대한 불안보다 더 큰 불안이기 때문
이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살아남고자 하는 생물학적 소망에서 나오는 소유성향과 인간
실존의 특유조건에서 타인과 하나가 되어 자신의 고립을 극복하려는 욕구에서 나온
존재의 성향이 함께 있다. 사회의 구조와 가치, 그리고 규범이 두 가능성 중 어느 한
쪽을 우세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게 한다.


3. 좋은 글귀들


· 오늘날은 예전의 동사를 명사로 대체시킨 용어를 사용하여 주체적 경험을 배제시킨
다. 과거엔 “나는 고통에 시달린다”라고 말한 것을 요즈음은 “나는 문제를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다”라고 하여 경험적 자아가 그가 소유한 그것, 즉 나의 감정을 내
가 소유한 무엇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 생성과정과 활동, 운동이 존재의 구성요소다. 존재는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유기체는 생성을 겪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변화하는 한에서만 실존할
수 있다.


· 올바른 삶이 윤리적 종교적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
제는 인류의 육체적 생존이 인간정신의 근본적 변화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인간정신의 이런 변화는 경제적,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 존재는 삶이며 활동이요, 탄생이며, 재생이고, 흘러나와서 흘러가는 것이며, 생산활
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는 소유, 아집, 아욕의 반대개념이다. 소유적 실존양식
을 깨고 나오는 것이 모든 참활동의 전제이다.


· 본성에 따라서 성장하려는 경향은 모든 생명체에게 공통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타고난 구조에 맞게 성장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시도에 대해서도 저
항한다.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결국 어른들까지도 모든 인간은 지식과 진
실에의 갈구와 애정에 대한 욕구를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표출하는데에 제약을 받고
있다.


· 내가 이해하는 자유란 일체의 지배적 원리를 벗어던지는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실
존구조에 맞게 성장을 가능케 하는 자유(자율적 제약)다.
· 모든 광신적 태도는 다른 충동, 흔히 그것과는 정반대의 충동을 감추려는 태도라는
의심을 낳는다. 모든 재산의 절대적 균등분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자신들
의 소유지향적 성향을 다른 식으로 노출시키고 있으며, 그 배후에 도사린 시기심이
라는 진짜 동기의 역설적 표현을 하는 셈이다.


· 근본적으로 우리는 인간 자체를 결코 묘사할 수 없다. 총체적인 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든 개성, 나에게만 뿌리박힌 나의 실체는 결코 완전히 포착될 수 없다. 그것
은 감정이입의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 완전히 일치하는 두 사람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와 나는 서로 살아있는 관계의 과정 속에서만 우리를 갈라놓은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


· 우리의 이성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신을 인식하도록 조직되어 있다. 특히
우리자신과 타인의 정신적 실재를 파악하도록 되어 있다.
· 존재영역을 넓히려는 모든 노력은 자기자신과 타인 그리고 주변세계의 실재에 대한
통찰을 높여준다. 탐욕과 증오의 극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표면을 뚫고 들
어가서 실재를 포착해야만 존재에 이른다는 불교의 명제를 끌어들여야 한다.


· 소유는 사용에 따라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이성의 힘, 사
랑의 힘, 예술적 및 지적 창조력 등의 모든 본질적 힘은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불어
난다. 베푸는 것은 상실되지 않으며, 반대로 붙잡고 있는 것은 잃기 마련이다.
· 소유지향적 인간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는 부모
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마치 난파당한 사람이 판자
를 움켜잡듯이 그들은 각기 상대편에게 매달린다. 소유지향에 근본을 둔 관계는 억
압과 부담을 주며, 갈등과 질투로 채워지게 된다.


· 기쁨은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가는 도상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체험이다.
· 신학적 및 세속적 용어로 ‘죄’라는 말은 권위적 구조와 결부된 개념이다. 그 구조는
인간의 중심이 그 자신 안에 있지 않고 그가 복종하는 권위에 있다는 점에서 소유
적 실존양식과 부합된다.


· 자기중심의 독거의 죄는 사랑의 행위로 보상(atone)할 수 있다. atonement(속죄,
화해)라는 말은 중세영어에서 결합을 의미하는 at-one-ment(하나 되다)에서 유래
한 것이다. 독거의 죄는 불복종이 아니므로 용서받을 필요가 없으나 치유될 필요는
있다. 치유수단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삶에 집착하지 않
는 것,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지금 여기는 영원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초시간적인 것이다. 영원이란 흔히 잘못 생각하듯이, 무한으로 연장된
시간이 아닌 것이다.
· 종교적 태도는 우리의 성격구조의 측면으로 간주될 수 있다.
· 우리는 헌신하기 위해서 존재하며, 헌신의 대상이 우리의 행동을 낳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 종교적 체계는 그것이 지배적인 사회적 성격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실제 사회
생활과 모순관계에 있을 경우 한낱 이데올로기에 불과하게 된다.
· 모성의 원칙은 무조건적 사랑의 원칙이다. 모성애는 은총과 자비다. 이와는 달리 부
성애는 조건적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정의다.
·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삶과 행복보다는 자신의 상품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
다.
· 시장적 성격은 사랑도 증오도 없다. 시장적 성격에는 가까운 사람이 없다. 하다못해
자기 자신마저도 모든 것에 대해 연관을 가지지 못하고 무관심을 낳는다.
· 슈바이처는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을 세계 속으로 적극적으로 파고드는 활동으로 보
았다. 이웃을 위해서 배려하고 베푸는 활동이다.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김혁교수님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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